퇴근길 칼럼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어릴 때 살던 동네를 걸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김해에서 다녔으니 눈 감고도 다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헤맸다. 길은 그대로인데 길가에 있던 것들이 전부 바뀌어 있었다.
문방구가 있던 자리에는 부동산이 있었다. 학교 앞 떡볶이집은 휴대폰 대리점이 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던 목욕탕은 폐업했다. 한 블록을 걸으며 세어보니 1층에 있는 가게가 병원, 약국, 부동산, 프랜차이즈 커피, 편의점, 그리고 또 부동산이었다. 낯선 동네에 온 것 같았는데 사실은 내가 자란 동네였다.
가게가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지 않고, 목욕탕 대신 집에서 씻는다. 나부터가 그렇다. 나는 그 떡볶이집이 없어질 때까지 몇 번이나 갔을까. 아마 대학에 간 뒤로는 한 번도 안 갔을 것이다. 사라진 가게를 아쉬워할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마음에 남는 게 있다. 없어진 가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 있었고, 주인이 동네 사람이었고, 돈을 쓰지 않아도 잠시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 문방구 앞에는 애들이 모여 있었고, 목욕탕 앞 평상에는 어른들이 앉아 있었다. 지금 그 자리에 들어선 가게들은 대체로 볼일이 있어야만 들어가는 곳이다. 진료를 받거나, 계약을 하거나,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
동네가 낡아서 사라진 게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임대료가 오르면 오래 버티는 가게보다 회전이 빠른 업종이 들어온다. 주인이 나이가 들면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 손님이 줄면 문을 닫는다. 다 각자의 사정이고 각자 최선을 다한 결과다. 누구도 동네를 이렇게 만들자고 결정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
다만 도시가 이런 변화를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한번 사라진 가게는 돌아오지 않고, 그와 함께 그 앞에 모이던 사람들의 시간도 사라진다. 그것이 쌓이면 동네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볼일을 보러 가는 곳이 된다.
그렇다고 세금을 들여 가게를 떠받치자는 말은 아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 가게를 지원금으로 붙잡아 두는 일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 부담은 결국 다른 시민이 진다. 장사는 장사의 셈법으로 굴러가는 것이 맞다.
다만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남아 있다. 동네마다 무언가를 사지 않고도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 오래된 가게들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 정리해 알리는 일 정도는 큰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오래된 간판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못 한다. 몇 년 뒤에는 남아 있는 게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건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아직 남아 있는 가게에 한 번이라도 더 가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이 동네를 걸을 때, 아빠가 자주 갔다던 가게가 아직 거기 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퇴근길 — 김해에서 나고 자란 30대 직장인, 두 아이의 아빠. 퇴근길에 김해를 생각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